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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계도 ‘ 태조 이성계 가계도 ‘ 에 대해서 알아보자?

고려를 멸망 시키고 조선을 세운 조선 1대 국왕 태조 이번에는 ‘ 이성계 가계도 ‘ 를 써보았네요. 태조 이성계는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의 아버지이기도 하죠. 요즘 인기인 이방원 가계도를 알기 위해선 우선 그 위위 이성계가계도를 아는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성계가계도

 



우선 태조 이성계는 총 여섯명의 부인들을 두었으며 8남 5녀로 총 13명이나 되는 많은 자식들을 두었습니다. 조선 왕조에서 가장 많은 나이에 왕이 된 인물이기도 하죠.

이성계 가계도

신의왕후 한씨 : 이성계와는 같은 고을 출신으로 전쟁터를 누빈 이성계의 뒷자바라지를 묵묵히 한 조강지처로 이성계가 조선의 왕이 되기 10개월전 55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녀는 총 8명의 자식을 낳았으며 6남 2녀를 슬하에 두었습니다.

[ 이성계 - 신의왕후 한씨 ]

진안대군 이방우 : 이성계의 장남이다. 효를 행했고 형제들을 아꼈으며 총명했고 품행까지 올바랐다 전해진다 . 어느날 술을 마시다 병이 걸려 1393년 사망한다. 지윤의 장녀와 결혼해 2남 2녀의 자식들을 두었다.

2대 국왕 정종 : 본명 이방과로 이성계의 차남이다.고려말 아버지 이성계의 뒤를 따라 전쟁터를 누볐으며 무인의 기질을 가장 많이 물려 받았다. 41살에 왕이 되었는데 조선 역사상 두번째로 나이 많은 국왕이다. 격구를 즐겼으며 효심이 깊어 아버지 이성계가 아꼈으며 동생 이방원 또한 왕위를 넘겨 받은 후에도 형에겐 깍득했다고 한다. 정안왕후를 비롯해 7명의 첩을 두었으며 무려 15남 8녀의 자식들을 두었다.63세 사망

 


익안대군 이방의 : 이성계의 3남이다. 권력욕이 적어 왕위 다툼등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정사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태종 이방원으로부터 형으로써 예우를 받았고 지병으로 1404년 사망했다. 정경옹주 최씨와 결혼해 2남 2녀를 두었다.

회안대군 이방간 : 이성계의 4남이다. 야심이 강해 박포의 꼬득임에 넘어가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귀양을 가게된다. 총 세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4남 3녀를 두었다. 1421년 사망했다.

3대 국왕 태종 : 본명은 이방원으로 이성계의 5남이다. 왕자의 난 이후 형인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이어 받은 뒤 , 조선초 건국 공신들을 숙청해 왕권을 강화해 훗날 즉위하는 세종이 성군이 될 수 있는 틀을 잡았다. 총 10명의 부인과 혼인 했고 무려 12남 17녀의 자식을 두었다. 56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덕안대군 이방연 : 이성계와 신의 왕후 한씨의 6남이다. 고려말 과거에 합격해 문과 급제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조선 건국전 요절한 인물로 이성계의 아들들중 가장 정보를 찾기 힘들다. 부인과 자녀는 없는것으로 추측된다.

경신공주 : 이성계와 신의 앙후 한씨 사이의 적차녀이고 1426년에 사망했다.

경선공주 : 몇째인지는 불명이나 이복자매 경순 공주보단 밑이었다고 기록되어있다.사망일도 불명확하다.

신덕왕후 강씨 : 이성계의 계비로 조선 최초의 왕비이자 태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자로 아들 이방석이 책봉 되지만 이방석의 권위를 세워주기도 전에 이른 죽음을 맞습니다. 두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이성계 - 신덕왕후 강씨

무안대군 이방번 : 이성계의 7남이다. 꽤 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욕심에 이방원과 이방석의 왕자의 난동안 어느편에도 서지 않고 방관하다가 후에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1명의 정부인과 1병의 측실을 두었으며 한명의 아들을 두었다.

의안대군 이방석 : 이성계의 8남이다. 10살에 나이에 신덕왕후의 욕심으로 세자에 책봉되는데 형들을 제치고 세자가 되었으나 권위가 단단해지리전 어머니 신덕왕후가 일찍 죽자 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이 벌여졌고 패배해 겨우 16세에 자객에 의해 살해당한다. 현빈 유씨를 세자빈으로 맞았으나 폐출되고 이후 심효생의 딸과 결혼해 한명의 아들을 두었다.

경순공주 : 흥안군 이제와 혼인 하였으나 1차 왕자의 난때 승리한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고 , 이후 태조는 딸인 경순공주마저 이방원에게 살해당할까 두려워 직접 딸의 머리를 만들어 출가시켜 비구니로 내보냈는데 , 이는 조선 최초의 출가한 왕족이다.

화의옹주 김씨 : 이성계의 후궁이다. 김해의 관기 출신으로 태조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될 수 있었다. 슬하에 딸 하나를 두었다

 


이성계 - 화의옹주 김씨

숙신옹주 : 태조 이성계가 말년에 본 막내딸로 사랑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1453년 사망했다고 한다.

성비원씨 : 이성계의 후궁이다. 태조의 후궁들 중에서는 가장 지위가 높았고 태종 이방원을 자신의 아들처럼 아꼈는데 이방원도 그런 성비를 어머니처럼 극진히 따랐다고하며 덕분에 후궁임에도 세번째 왕비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슬하에 자식은 없다. 1449년 80세이상 장수한 나이로 사망했다.

정경궁주 윤씨 : 이성계의 후궁이다. 밀직부사였던 아버지 유준에 의해 태조의 눈에 들었고 후궁이 될 수 있었다. 슬하에 자식은 없었으며 생년월일도 불명확하다.

찬덕주씨 : 이성계의 후궁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녀가 후궁이라는 기록이 없는데 세종실록에는 그녀가 존재했다는 분명한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슬하에 한명의 딸을 두었다.


이성계 - 찬덕주씨

의령옹주 : 딸이 적었던 이성계의 서장녀이다. 다섯명의 딸들중 둘째로 추정이 된다고 한다. 세종실록에는 의령옹주의 어머니인 찬덕주씨가 천생이라고 나오는데 신분이 매우 낮은 출신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방원도 하고 싶은데 부인이 10명 자식이 27명이었나 허허 우째해…